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문단 편집) ==== [[피에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2.bp.blogspot.com/la-piedad-basilica-de-san-pedro-ciudad-del-vaticano-roma-italia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3.bp.blogspot.com/Michelangelo_Pieta_Mary_face.jpg|width=100%]]}}} || || 피에타, 1498~1499년, 대리석, 174 × 195cm,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 [[성모 마리아]]의 얼굴 부분 || 그리고 24세에 그는 〈[[피에타]]〉로 순식간에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잘 모르면 헷갈릴 수 있는데, 문서에 가보면 알겠지만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명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주제이다. 물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모든 피에타 중 가장 대표적이긴 하다.] 지금도 이 작품은 모든 피에타에 관한 조각들 중 최고로 평가받는데, 심지어 미켈란젤로 자신의 다른 피에타들도 이걸 능가하지 못했다. 미켈란젤로가 이 피에타를 만들게 된 것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하나 있다. 메디치 가를 나온 후 2년이 지나 미켈란젤로는 오랜만에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아서 저택을 찾았는데 정원에 있는 잠자는 큐피드 상을 보고 지나가던 조각가가 '땅 속에서 찾은 것처럼 만들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한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 미켈란젤로는 그 상을 똑같이 만들어 땅 속에 묻었다가 파낸 후 그을리게 만들어 마치 발굴된 [[고대 로마]] 조각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밀라네제라는 로마의 골동품상에게 팔았는데 밀라네제가 이를 포도밭에서 발굴된 로마 조각상이라며 고위 성직자인 리아리오 추기경에게 팔면서 문제가 된다. 후일, 위작에 사기당한 걸 알게 된[* 고대 조각상에는 없는 인물의 생기와 생생한 표정 변화가 있어 깨달았다고 한다. 물론 고대 조각상의 얼굴 표정이 한결같이 무표정하다는 속설은 이후〈[[라오콘]]의 군상〉이 발견되며 깨지게 되었지만.] 리아리오 추기경은 이 조각상을 만든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며 전령을 시켜 고작 20세의 어린 미켈란젤로를 찾아오게 된다. 이 잠자는 큐피드 사건은 미켈란젤로를 로마에 입성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리아리오 추기경이 미켈란젤로의 첫 후원인이 되면서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만드는 계기로 이어진다. 참고로 이때 밀라네제가 환불해준 큐피드 상은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로 명성을 얻고 난 뒤 더 비싼 값에 팔렸다. 이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의 아름다움과 [[예수]]의 [[죽음]]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사실 피에타상의 실제 크기는 2m 이상으로, 굉장히 크다. 이 [[성모]]상은 비례학적으로 볼 때 미켈란젤로가 근육에 집착하여 불법 해부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오류가 심한데, 이는 아래쪽에서 석상을 올려다 보았을 때 [[예수]]의 시신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2배 정도 크게 조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2m에 달하는 높이와는 달리 옆면의 두께는 1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옷자락 주름의 입체감 때문에 깊이 있는 공간감이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다른 피에타 작품들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눈을 맞추거나, 뺨을 맞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계단의 성모'를 포함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작품에서는 마리아가 아들의 얼굴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마도 이것은 미켈란젤로가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읜 것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고 추즉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이 작품에서 마리아가 아들의 얼굴을 외면하도록 해서 아들을 처참하게 잃은 그 슬픔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한편, 장래의 부활을 믿기에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분석해본다. 이 [[성모]]상은 재미있는 점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그의 이름이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ieta signature.jpg|width=100%]]}}} || || 미켈란젤로의 서명 || 미켈란젤로가 이 조각으로 일약 [[스타]]로 등극하고 나서도, 사람들이 이 조각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별로 관심을 안 갖자 열받아서는 밤에 몰래 성당으로 가서 자신의 이름을 조각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옷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레이스 옷깃을 자세히 보면 [[라틴어]]로 '''"MICHAEL. AN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라고 조각되어 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너무나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고 한다. 조각가가 조각에 자신 스스로의 사인을, 그것도 [[성모 마리아]]의 옷깃에 조각으로 남기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다행히도 이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행으로 그친다. 일화에 의하면, 그렇게 피에타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고 밤중에 길을 나섰는데 밤하늘을 보자 너무 아름다웠다고 느꼈단다. 그런데 미켈란젤로가 생각하기를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든 하느님은 당신의 작품 어디에도 서명을 넣지 않았는데 자신은 고작 조각 하나에 오만하게 서명을 넣은 게 너무 부끄럽게 느껴져서, 그 이후 다시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넣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혹은 자신이 만든 피에타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기대와는 달리 피렌체에 대한 언급 없이 로마 또는 롬바르디아 출신 예술가의 작품일 거라는 평가를 듣자 화가 나서 한밤중에 대성당에 몰래 들어가 출신지와 이름을 새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2가지 일화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지나치게 젊고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 확실치 않은 정보지만, 이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미켈란젤로 어머니의 얼굴이라는 말이 있다.]에게서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나 보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동정녀인 [[성모 마리아]]는 속세의 나이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기에, 일부러 젊고 아름답게 조각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예수]]의 모습은 그저 힘없이 축 늘어진 인간의 모습이다(그러나 위에서 보면 은은한 미소를 풍기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